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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책 추천,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by 루나디아 2023. 2. 8.

제목만 보면 이 책은 야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부제도 '어느 젊은 시니의 야구 관람기'고 표지 아래엔 파울, 사인, 번트의 야구 용어와 동작이 그려져 있어요. 이 책이 야구와 관련된 책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다만 야구만 이야기하는 건 아니라는 점에서 저는 인생책으로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를 추천합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야구를 좋아하는 분은 대단히 만족할 것 같고, 야구를 잘 모르는 분이라면 야구가 궁금해 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생책추천, 이게 다 야구때문이다
색이 바랜 책표지가 얼마나 오래 함께 있었는지를 말해준다

 

'나라는 팀, 우리라는 팀'을 생각한 인생북

책 맨 뒤에 이런 글귀가 써 있습니다. 2016년 1월 6일. 다 읽고 난 후 마지막 페이지에 써 놓은 책 후기의 일부입니다. 2016년이라면 한참 대행사에서 동료들과 일을 할 때였네요. 유능한 4번 타자가 되어, 팀을 승리로 이끌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에 매일 야근을 불사하던 시절이었네요. '나'라는 한 사람을 어떻게 매니징 할지, 그리고 팀 안에서 내 역할은 무엇인지 고민하던 때라서 이런 글을 남겼던 것 같아요. 

책을 사면 발행일자를 살펴보는 습관이 있어요. 이 책은 2011년 10월 31일에 초판 1쇄가 나왔고 2015년 10월 26일에 초판 6쇄가 나왔더라고요. 제가 산 이 책이 아마도 6쇄본이겠죠. 출판업계를 잘 모르지만 이 정도면 그리 많이 성공한 책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인생책이라고 추천을 하는 건 언제 읽어도, 지금 읽어도 느끼는 게 많기 때문이에요. 

 

시인이 쓴 에세이

명작은 시간이 지날수록 빛난다고 하죠. 사람들에게 추앙받는 많은 작가 중에서도 저는 시인들이 단연 대단하다고 봅니다. 도서 아리랑이나 태백산맥처럼 방대한 장편소설을 쓰는 작가도 대단하지만, 몇 줄 안되는 글귀로 시간을 넘어서 사람들의 마음에 닿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니까요. 이 책의 작가 서효인도 시인입니다. 읽다 보면 묘한 운율감이 느껴지는데요. 야구도 주고, 받고, 치고, 뛰고, 공격을 할 때는 텐션이 높게, 수비를 할 때는 조금은 안정적인 텐션으로 모종의 리듬감을 가지면서 보게 되거든요. 책이 야구를 다루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운율감이라고 생각했는데 읽을수록 시인의 필체란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시들은 쉬운 단어로 쉽지 않은 마음을 편하게 풀어내는 것인데요. 그래서인지 이 책은 야구를 모르는 사람도 감정을 잘 따라갈 수 있도록 쉽게 야구를 설명하고, 야구를 하면서 벌어지는 상황들과 일상을 잘 매치해 삶을 돌아보게 해 줍니다. 

 

드래프트 되는 청춘들 

장기 여행을 선호하는 편인데요. 그때는 꼭 책 한권을 들고 갑니다. 한 달간 한 번을 볼지, 열 번을 볼지 모르기 때문에 좋아하는 책을 챙기는데요. 늘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를 들고 가요. 이번 글을 쓰기 위해 책을 펼쳤는데 드래프트 되는 청춘들이란 글에 세비야에서 본 공연티켓 3장이 들어있네요. 까사 델 라 메모리아(casa de la memoria)라는 공연장에서 플라멩코 공연을 보고 왔는데요.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평가받는 것이 요즘 시대의 청춘들의 모습과 많이 비슷해 보였던 것 같아요. 

드래프트 하면, 많은 사람들이 호텔에서 신인선수가 선발되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운동선수들의 드래프트 현장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실 우리는 지금 모두 드래프트 상황인지도 모르겠어요. 수 많은 드래프트에 나온 선수들 중 직업인으로 프로구단에 갈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죠. 경기는 나빠지고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살면서 프로가 되기 위해 우리는 늘 심사대에 올라온 느낌으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있죠.

이것이 제가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한데요. 프로야구는 시즌이 시작되면 매일 BGM처럼 틀어놓으면서도 아마추어 야구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책을 보면서 프로에 오지 못한 선수들, 2군에서 땀 흘리는 선수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러면서 나와 주변의 사람들을 살펴보게 되었어요. 

전 열심히 할 필요 없다, 잘하면 된다.는 말을 자주 했던 사람이거든요. 그때는 버티는 힘의 크기와 무게를 몰랐던 것 같아요. 요즘은 어떤 일을 끝까지 열심히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선배 중 한 명이 자신은 영업과 맞지 않는데 지금까지 한다고 말하는 분이 있어요. 전에는 그럼 빨리 다른 일을 찾아보라고 했지만, 지금은 10년을 넘게 한 거면 그것 자체로 재능이란 말을 합니다. 10년이 넘는 드래프트 시간 속에서 잘리지 않고 살아남은 거라면, 그게 참 재능 아닐까요

 

세상 앞에 당신은 혼자가 아니므로

친한 동생 커플이 결혼을 앞두고 프로포즈 할 때 쓴다며 축하 영상을 부탁해 왔습니다. 어떤 말을 해야 할까 한참 고민하다가 책에 있는 구절로 대신했습니다. 곧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데 지금도 만나면 그 영상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대성공인 거죠. 

"당신이 세상에 둘러싸여 대거리를 주고 받을 때, 내가 자리를 박차고 달려 나갈게. 어깨를 걸칠게. 당신은 나와 마찬가지로 정직하게 살아왔고, 우리 모두는 그걸 잘 안다. 나는 당신의 편이다. 당신은 어떤가. 어디든 마음으로, 혹은 정신으로, 끝내는 몸으로, 우리는 같은 편. 광포한 무리들에 맞선 지금, 우리는 벤치클리어링 하러 간다. 

당신과 나의 동해 바다 같은 오지랖으로 펼쳐진 위아래 없는 연대의식. 이를 줄여서 '벤치클리어링'이라고 부른다. p.32"

제가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나에 대해, 사람에 대해 고민을 하게 만들어요. 독선적인 모습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팀작업이 그리울 때가 많아요. 이것이 맞는지 틀린 지 말해 줄 사람이 없으니까요. 그러다 보면 내 생각이 옳겠거니 지레짐작하면서 밀고 나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약 지금 내가 팀 구성원이라면 어땠을까, 지금 내 모습이 누군가와 함께 하기 괜찮은 사람인가?라는 생각을 책을 읽으면서 해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은 독고다이, 혼자 왔다가 혼자 간다.라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라면 이 책과는 맞지 않을 수 있어요.

반대로 관계에 대한 고민이 많고, 자신의 방향성을 찾아가는 분들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의 저자인 시인 서효인의 에세이『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이 책은 저자 자신에 대한 기록과 우리에 대한 기록, 그리고 응원과 격려를 담고 있다. 저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했던 처음이자 마지막 야구장을 떠올리며 할아버지를 추억하고, 할머니의 건강을 간절하게 소원하기도 한다. 이처럼 야구에 얽힌 자신의 추억과 함께 야구에 빗대어 삶을 되돌아본다. 실패하더라도 다음 등판이 남아 있음을, 실패의 예정과 그리고 도전이 뒤따르는 우리의 삶 자체가 퍼펙트게임이라는 깨달음을 전해준다. 저자는 이러한 이야기들이 중요한 타석에 들어서기 전에 받는 훌륭한 격려와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삶의 드래프트의 현장에서 묵묵하고 뜨거운 이닝을 함께 버티고 있는 청춘들이 역전만루홈런을 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저자
서효인
출판
다산책방
출판일
2011.10.31